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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시대 해적 장백로 역사


해적은 언제나 있어왔지만 고대 중국에 대해적은 보기 힘듭니다. 후일 명나라의 정지룡이나 청나라 시대 여해적 정일수등 대해적이 생기지만 시대적 상황에 따른것인지 고대중국에는 그만한 대해적들을 찾기 힘든데 그나마 그들의 선배 될 만한 해적을 소개해봅니다. 

바로 후한시대 해적 장백로입니다. 장백로에 대한 기록은 그리 길지는 않지만 특기할만 하여 써봅니다. 

때는 후한시대 효안제의 통치시기입니다. 이 당시 천재지변이 자주 일어났습니다.107년 군국 18곳에 지진이 41곳에 홍수가 28곳에 큰바람이 불고 우박이 내립니다. 바로 다음해 108년에는 낙양과 40개 군국에 홍수가 나고 큰바람이 불고 우박이 떨어집니다. 109년에는 낙양에 대기근이 발생해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기에 이릅니다.


지진 홍수 가뭄 3종세트 

천재지변과 동시에 강족과 전쟁 중 이었고 남흉노 역시 이 소식을 듣고 반란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이니 장백로도 이것을 기회로 크게 세력을 확장하고 약탈한듯 합니다. 

전체 기록에 따라 보면 장백로는 발해에서 일어난 해적으로 109년 7월 해안지방 9개군을 약탈하고 이천석관리와 현령, 현장들을 살해합니다. 독통감론에는 장백로가 9개군을 함몰시켰다고 하니 위세가 대단했습니다. 또한 이 일에 대해 평가하기를 후대의 손은, 두건덕, 황소, 방랍, 이자성이 뒤따라 일어났고 사해가 고동쳤다고 하며 장백로가 이들의 효시였다고 합니다.

대략적인 장백로의 활동영역? 입니다.

이때 장백로의 해적들은 붉은 두건에 진홍색 옷을 입은 3천명으로 장백로 자신은 장군이라 칭하였습니다. 각 군국에서는 스스로 이를 막거나 진압할 능력이 없었는지 중앙에서 시어사 방웅을 파견하여 주와 군의 군대를 감독하여 공격하게 합니다. 

홍건적의 선배 붉은해적단입니다.

중앙의 공격이 이루어지자 장백로는 중앙과 싸워 승산이 없다고 봤는지항복을 청합니다. 물론 이건 전부 속임수였습니다.



장백로의 해적들은 항복을 청한지 얼마안가 다시 주둔하여 모였고 다음해 110년 다시 군현들을 공격해 태수와 현령을 살해합니다. 게다가 무리가 더욱 왕성해져서 조정은 어사중승 왕종에게 부절을 주고 파견하여 유주와 기주의 여러군의 병사들을 발동하게 하였습니다. 동원된 병력은 수만명이나 됩니다. 장백로가 처음 일어났을때 무리가 3천이었음을 고려하면 아마 장백로의 세력도 만단위로 늘어난듯 합니다. 

그리고 법웅이라는 인물을 청주자사로 임명하여 왕종과 힘을 합쳐 토벌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법웅이라는 인물은 후일 삼국지에 나오는 법정의 증조부입니다. 

책부원구에 따르면 왕웅과 법적이 힘써 여러번 싸워 장백로의 해적들을 참수하고 익사시킨것이 수백명이라고 합니다. 장백로와 해적들은 도주하였고 그들이 두고간 많은 재물을 거두기에 이릅니다.  

책부원구에 나오는 내용을 전부 제대로 번역하기는 어려워 간략히 다루자면 어사중숭 왕웅은 싸우는 것 보다는 좋게 타일러 항복하게 하는게 더 낫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전쟁이 좋은게 아니라는 생각과 요동의 먼 섬까지 배를 타고 가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발해만의 섬들은 많고 바다는 험한데 섬에 근거한 해적들을 무턱대고 들어갔다가는 비용과 손실이 만만찮을 겁니다.

그리고 병사들을 파하여 돌아가게 했는데 백성들의 고생도 경감시키고 해적들의 세력이 약해졌다고 본것 같습니다. 그러나 장백로는 되려 이를 노려 크게기뻐하며 사람들을 약탈하려 쳐들어옵니다. 


기뻐하는 버기장백로

그러나 청주의 동래군만은 혼자 아직 병사들을 파하지 않아 멀쩡했습니다. 청주자사인 법웅이 혹시 모르니 동래군이 병력은 아직 대기하게 한것 같습니다. 어쨌든 장백로의 해적들은 동래군에 병사들이 멀쩡한 것을 보자 놀라 요동의 섬으로 달아납니다. 아직 세력을 회복하지 못하였고 동래군의 병력이 더 우세하였나 봅니다. 


동래군 하나의 병력에 쫄아서 티니 이때 이미 끝났습니다.

이후 111년 해적들은 굶주리다 못해 다시 동래군으로 침공합니다. 요동의 섬들이 자원이 많은게 아니니 약탈을 통해 물자를 얻어야 하는데 섬으로 쫓겨난 이후 약탈은 커녕 되려 놀라서 도주했으니 이래나 저래나 한번 해보자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당연하게도 법웅에게 격파되었고 장백로는 요동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재기하지 못하고 요동사람인 이인이라는 사람에게 잡혀 죽게 됩니다. 이로서 해적은 깨끗이 소탕되었습니다. 


한 때 9개 군국을 침략하고 수만명이 동원되어야 했던 해적 장백로는 이렇게 흔한 방식으로 허무하게 사망합니다. 

맥적은 정말 고구려 음식일까? 역사

출처 역개루  http://cafe.naver.com/historygall/20347

맥적하면 흔히 불고기의 시초 고구려에서 만들어진 고기요리로 알려져있습니다.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6931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38845
일반적인 맥적에 대한 설명 


눈물나게 맛있는 수령님이 내려주신 불고기 
 
대부분 맥적에 대한 설명이나 글들은 맥적이 고구려의 음식이고 중국에서 유행했으며 양념한 고기이다 라는 내용입니다. 
특히 중국의 후한, 위진시기에 유행한것으로 보이는데 정작 이렇게 유행한 맥적에 대해 중국음식문화사 책에는 맥적은
유목민족의 음식이라 나오며 양념하여 만든 음식이라는 말은 전혀없습니다. 되려 단지 통째로 구운 양, 돼지 요리라고 나옵니다.
일반적으로 알던 맥적은 고구려의 음식이라는 내용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래서 한번 찾아봤습니다.
 
 
검색질을 활성화하면 상당부분 해결됩니닷.

일단 맥적의 시초가 고구려라고 직접적으로 나오는 문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맥적에 대한 언급된 문헌으로는 수신기, 석명, 송서, 진서등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처음 맥적에 대해 말할때 나온 문헌은 수신기인데 이는 최남선이 고사통에서 수신기의 내용을 인용하여 강자 맥자라는 부분에서 강자는 강족의 음식 맥자는 맥족 즉 고구려의 음식이라 쓰면서 나온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수신기의 내용은 
胡牀,貊盤,翟之器也。羌煮,貊炙,翟之食也。自太始以來,中國尚之。貴人,富室,必留其器。吉享嘉賓,皆以為先。戎翟侵中國之前兆也。
이러한데 여기서 말하는 바는 오랑캐 음식 쳐묵하니 오랑캐에 쳐발리지 오랑캐 음식쳐묵한건 오랑캐에게 발릴 전조였다. 라는 내용으로 강자와 맥자에 대해서도 적자기야 라는 말로 나옵니다.
 
쳐묵쳐묵

뒷부분의 내용까지 본다면 적은 융적을 가리키는 말로 특정 족속보다는 통채적인 주변 오랑캐를 가르킨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딱히 특정 국가의 음식이라는 언급은 없으며 단지 강자와 맥자만 나왔으니 강족의 음식 맥족의 음식으로 볼 만합니다. 
그러나 딱히 맥적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떤음식이며 조리가 어떠한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없습니다. 
또한 맥적이라 하여 단순히 고구려의 음식이라 하는 것은 상당히 무리가 있습니다. 일단 맥이라는 말이 고구려를 가리키곤 하지만 언제나 고구려를 가리키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남사의 외국전은 이맥전이며 예맥외에도 호맥 만맥과 같은 맥이 들어가는 명칭들이 있습니다.
이런 맥적에 대해 어떤음식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나온 것은 석명의 석음식 부분인데
 
<li>炙炙也炙於火上也</li><li>脯炙以餳密豉汁淹之脯脯然也</li><li>釜炙於釜汁中和熟之也</li><li>䐄銜也銜炙細密肉和以薑椒鹽豉巳乃以肉銜裹其表而炙之也</li><li>貊炙全體炙之各自以刀割出於胡貊之為也</li>적전체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첫부분은 적은 불위에 굽는 것이라는 내용이고 둘째부분은 포자 셋째부분은 부자 넷째부분은 함자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다섯째부분은 맥자 맥적에 대한 내용입니다. 맥자부분은
貊炙全體炙之各自以刀割出於胡貊之為也
이러합니다.
 

그냥 올린 말 그대로 통돼지구이
 
전체를 구워 각자 칼로 나누어 먹는 다는 내용이며 호맥의 것이라는 설명까지 있습니다. 
사실 이부분은 위에 있는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38845 적에 대한 설명에도 나온것인데 맥자 즉 맥적은 호맥의 음식이란 것이됩니다.
 
감수성에 쳐들어오신 오랑캐녀 호녀 되시겠습니다.  

물론 호라는 글자가 5호16국에도 나오듯이 단순히 오랑캐를 가리키도 합니다만은
예맥이 아닌 호맥의 음식 호맥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동주 외국지에는 조나라가 북쪽으로 호맥과 이어진다 나오고 회남자에는 호 맥은 흉노국을 가리킨다고 나옵니다.
閒對曰:「趙東鄰燕,西接秦境,南錯韓魏,北連胡貊,四野之地,其民習兵,不可輕伐。
胡、貉、匈奴之國,縱體拖髮,箕倨反言,而國不亡怴怴未必無禮也。
또한 답소무서의 주석에는 맥은 북적을 가리킨다고 나옵니다.
︰北狄。

이러한 것을 토대로 볼때 대체적으로 호맥이란 흉노를 가리킨다 봐야할것입니다. 
또한 답소무서의 주석으로서 본다면 강자 맥자에서의 맥은 북적을 가리키는 내용이라 봐야할것입니다.
물론 단지 이것만으로는 맥적이 고구려의 음식이 아니라 하기에는 부족하다 여기실만한 분들이 있을터이므로 비장의 카드를 준비해 뒀습니다.
 
 
 
이 카드 말고...
 
지은이 환관...
바로 염철론입니다
古者不粥飪,不市食。及其後,則有屠沽,沽酒市脯魚鹽而已。今熟食遍列,殽施成市,作業墮怠,食必趣時,楊豚韭卵,狗(月習)馬朘,煎魚切肝,羊淹雞寒,挏馬酪酒,蹇捕胃脯,胹羔豆賜,鷇膹鴈羹,臭鮑甘瓠,熟梁貊炙
맨끝부분에 보면 숙량맥자熟梁貊炙라 나옵니다. 
염철론이 전한 선제 시기에 쓰여진 책임을 생각하면 그것도 고구려 건국이전 시기 책임을 생각하면 고구려에서 절대 먼저 만들수가 없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네 그러니까 이게 무슨소리냐면 위에 써논거 사실 다 그냥 분량? 채우기고 염철론으로 다 쫑낼수 있는것이지요...
 
여타 호맥이 어쩌구 맥이 어쩌구 흉노가 호맥이네는 동주 외국지니 회남자니 답소무서니를 끄집어 낸건 할짓없이 글을 불려보기 위한 수작이지만서도 그냥 넘어가주시기를 바랄뿐입니다. 모든 원흉은 어려운 한자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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